▲ 실습은 한국자동차연구원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작업실에서 6개 조로 나뉘어 진행됐다. 성시영 대표와 함께 한 첫 실습조 학생들.

강의실과 산업 현장 사이에 놓인 골짜기, 협력으로 뛰어넘는다

대학 교육은 오랫동안 학문적 깊이를 추구해왔지만,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전통적인 학부 교육은 산업 현장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 분야처럼 기술 변화가 빠른 영역에서는 이러한 괴리가 더욱 두드러진다. 학생들은 교과서에 담긴 이론을 배우지만, 막상 졸업 후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최신 기술이나 실무 경험을 접할 기회는 부족하다. 게다가 세부 전공과 분야별로 구분된 현재의 대학 교육은 종종 특정 분야의 울타리에 갇혀 다양한 기술과 지식이 뒤섞인 현실 세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차세대통신사업단(NCCOSS)을 비롯한 혁신융합대학사업은 이에 대한 해법이다. NCCOSS는 유·무선 통신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실질적인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한편, 산업계가 요구하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특히 여러 분야에 폭넓게 적용되는 기반기술로서 통신 기술의 특성을 고려하여 학과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대표적인 분야가 자동차 산업이다. 자동차 산업은 ‘한 국가의 산업체계가 얼마나 고도화됐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기술이 집적된 종합 융합 분야다. 따라서 오늘날처럼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다른 분야에 비해 변화가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자동차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자율주행, 커넥티드 카, 전동화 등 첨단 기술이 집약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대학 학부 교육만으로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복합적인 기술을 다루기 어렵고, 학생들은 자동차라는 특수한 분야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힘들다.

▲ 성시영 대표가 이론 강의에서 전기차의 핵심 장치인 전동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NCCOSS는 미래의 통신과 자동차 기술 융합에 앞장설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과 협력하여 진행하는 현장 실습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와 함께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학생들이 졸업 후 바로 실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역량을 키워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대학 교육과 산업 현장 간의 간극을 좁히고, 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크게 기여한다.

자동차와 통신 기술의 융합, 현장에서 깊이를 더하다

▲ 하루 9시간 이상의 교육이 이어지는 열흘 간의 일정임에도 학생들은 피곤한 기색 없이 열성적으로 교육에 참여했다.

차세대통신사업단이 운영하는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 현장 실습 프로그램은 정보통신 기술과 자동차 산업의 융합을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약 10일간 합숙 형태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연구원 내에서 숙식하며 하루 종일 몰입형 학습을 경험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번 실습 프로그램은 전기자동차 엔지니어링 기업인 ‘케이에이랩스’의 성시영 대표가 강사로 참여하여, 풍부한 경험과 깊이 있는 지식을 학생들과 공유했다. 성 대표는 과거 한국자동차연구원에서 15년간 근무하며 전기자동차 분석, 주행 모니터링, 미래차 전환 컨설팅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특히 내연기관 부품 업체들이 전기차 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직접 목격하며, 이론과 실제의 괴리를 절감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 대표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성시영 대표는 "학생들이 전기차를 단순히 엔진과 연료통이 배터리와 모터로 바뀐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구동 메커니즘 차이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술적, 산업적 변화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고민은 커리큘럼에서도 엿보인다. 이번 교육 프로그램은 전기차 기술의 역사, 물리적 원리, 산업 동향 등을 폭넓게 다루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구체적인 강의 내용은 리튬이온 배터리, 인버터, 모터, 캔(CAN, Controller Area Network) 통신 등 전기차의 핵심 구성 요소를 망라한다. 특히 각 기술의 역사적 배경과 물리적 의미를 깊이 이해하도록 풍성한 이야기를 전달하여 통신 분야를 전공한 학생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이들 기술요소와 친숙해지도록 했다. 예컨대, 전기의 어원을 호박(엠버)에서 찾고, 전류의 흐름 방향이 실제 전자 이동 방향과 반대인 이유를 설명하는 등, 과학사적인 지식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곁들이거나, 캔 통신을 설명할 때 뇌의 뉴런 작동 원리와 비교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각 주제에 대해 2~3일씩 할애해야 할 분량을 5일 안에 소화할 수 있도록 4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800페이지로 압축하여 제공했다고 한다. 학부생을 위한 현장 실습 치고는 꽤나 공들인 프로그램인 셈이다.

생생한 현장 중계: 자동차와 통신이 만나는 곳

충청남도 천안,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있는 실습 현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이른 아침부터 차세대통신 혁신융합대학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분주하게 움직인다. 오늘은 이론으로만 배웠던 전기 자동차의 핵심 기술을 직접 체험해보는 날이다.

▲ 실습 중 학생들에게 차량의 내부 통신 네트워크 모니터링 결과를 보여주는 성시영 대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동차에 관심은 있지만 현장을 경험할 기회를 얻기는 어려웠다. 이번 교육이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은 이유다. 

실습장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테슬라의 사이버트럭이다. 강사인 성 대표가 연구를 위해 확보한 차량으로, 사이버트럭의 독특한 외관은 학생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유의 사이버펑크 스타일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능으로 무장한 사이버트럭은 공개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았으며, 자동차 업계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성 대표는 본격적인 실습에 앞서 학생들에게 사이버트럭의 독특한 기술요소를 설명하고 학생들이 직접 운전석에 앉아보게 함으로써 앞으로 진행될 교육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학생들은 사이버트럭에 적용된 최신 통신 기술과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사이버트럭으로 흥분된 학생들의 마음을 가라앉힌 성 대표의 지도 아래, 학생들은 실제 차량을 분해하고, 최신 장비를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하며, 자동차와 통신 기술의 융합을 몸소 체험할 기회를 얻었다. 실습장의 한 켠에서는 티어 다운(Tear-Down) 실습이 한창이다. 티어 다운이란, 자동차를 분해하여 각 부품의 구조, 작동 원리, 제조 기술 등을 분석하는 과정을 말한다. 학생들은 조심스럽게 전기차의 부품을 하나씩 분해하며, 교과서에서만 보던 부품의 실제 모습과 작동 원리를 꼼꼼히 살펴본다. 학생들은 단순히 분해된 부품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부품의 역할과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각종 계측장비와 센서 정보를 실제로 살펴보기도 했다.

▲ 현장 실습 차량에 설치된 패널. 자동차의 여러 ECU에서 수집된 정보가 표시되어 차량 상태를 세세하게 알 수 있게 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차대동력계를 이용한 구동 테스트가 진행된다. 차대동력계는 자동차의 바퀴를 회전시켜 엔진의 출력, 토크, 연비 등을 측정하는 장비다. 학생들은 전기차를 차대동력계 위에 올려놓고, 가속 페달을 밟아 속도와 출력을 변화시키며, 실시간으로 측정되는 데이터를 꼼꼼히 기록한다. 진단기를 차량에 연결하여 캔 통신 데이터를 분석하는 학생들의 눈은 더욱 빛난다.

자동차에는 엔진 제어, 브레이크 제어, 에어백 제어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전자 제어 장치(ECU, Electronic Control Unit)들이 탑재되어 있다. ECU는 자동차의 '두뇌'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센서로부터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각 장치를 제어한다. 캔 통신은 이러한 ECU들이 서로 통신하기 위해 사용하는 통신 규약으로, 자동차 내의 다양한 전자 장치들이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통신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기술이다. 이 기술을 통해 ECU들은 차량의 상태를 감지하고, 필요한 제어를 수행하며, 운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학생들은 자동차의 신경망 역할을 하는 캔 통신과 함께, OTA(Over-The-Air) 기술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체험했다. OTA는 무선 통신을 이용하여 자동차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자동차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야 했지만, OTA 기술 덕분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최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수 있다. 이는 자동차의 성능 개선, 새로운 기능 추가, 보안 강화가 주행 중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는 뜻으로, 더욱 편리하고 안전한 운전 경험을 제공한다.

열흘간 펼쳐진 새로운 세계

NCCOSS의 한국자동차연구원 현장 실습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번 교육 프로그램이 진로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입을 모은다. 통신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자동차에 관심은 있지만 현장 경험은 물론, 체계적인 전문 정보도 얻기 쉽지 않았는데 이번 교육 덕분에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 차량 내 통신을 모니터링하는 장비를 설명하는 성시영 대표. 

모빌리티 분야로 진출할 계획인 전남대학교 전자컴퓨터공학부 김민선 학생은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며 "기초는 물론, 제어부터 통신까지 전 분야를 두루 접할 수 있어서 소중한 기회였다"는 소감을 밝혔다. 자동차 회사에 취업하고 싶다는 울산과학대학교 기계공학부의 서동욱 학생은 "차량의 구조를 실제로 보면서 확인해보니 강의로만 들었을 때보다 이해하기 쉬웠다"며 본 프로그램을 다른 학생에게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다양한 시스템과 연동하는 데 관심이 있는 서울시립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김채연 학생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의를 담당하신 박사님께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좋았다"는 소감을 밝히며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끼리 서로 정보도 얻고 자극받는 것도 많아 뜻깊었다고 덧붙였다. 차량 통신을 더 연구하고 싶다는 국민대학교 전자공학부 이채원 학생은 “강의실에서는 이론으로만 알던 것들이 실제 자동차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며 “실제 현장을 경험하니 큰 자극이 됐다”고 강조했다. 방산 분야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는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부 김도헌 학생은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서 자동차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다”며 “제 전공에는 관련 과목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번 강의 덕분에 자동차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교육을 준비한 한국자동차연구원에게도 이번 프로그램은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현장 실습 교육을 준비하고 운영한 한국자동차연구원의 김은하 연구원은 "학생들이 이번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산업계에서도 인정받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규모를 확대하고, 다양한 산업 분야와 협력하여 더욱 풍부한 실습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대학 교육과 산업 현장을 연결하는 성공적인 사례로 남았다. 이는 단순히 교육 방식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