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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코딩하는 시대, 스승의 역할은 ‘질문’… 학생의 ‘설계’ 돕는 러닝메이트 될 것”

박호성 전남대 단장

4차 산업혁명의 신경망인 통신 기술이 6G로 진화하고 AI와 결합으로 전방위로 확대되는 대전환의 시기다. 이처럼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는 배움과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대학 교육의 가장 큰 과제다. 캠퍼스에서는 이미 기존의 틀을 깨는 혁명이 진행 중이다. 수도권과 지방 대학, 지자체가 컨소시엄을 이뤄 미래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의 ‘혁신융합대학사업’이 대표적이다.

미래의 핵심 산업인 통신 분야에서도 차세대통신사업단이 설립되어 지난 3년 동안 새로운 커리큘럼을 만들고 공유하는 실험을 다양하게 진행했다. 이 실험이 반환점을 돈 지금, 전남대 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박호성 교수가 지난 3년을 회고했다. 그는 “국립대 특유의 견고한 학사 구조에 유의미한 균열을 낸 시간”이라고 정의하며, “학생들이 막막함을 극복하고 시야를 지역 너머로 확장하도록 돕는 한편, 생성형 AI의 파도 속에서 공학 교육의 본질인 ‘설계와 검증’ 역량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 혁신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있는 박 단장을 만나 그간의 고충과 성과, 그리고 미래 비전을 들어봤다.

‘깊이’와 ‘속도’의 조화, 대학의 담장을 ‘공유’로 넘다

img1박호성 단장은 국립대 교수로서 안정적이고 신뢰성 높은 커리큘럼과 현실의 변화무쌍한 변화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전남대와 같은 국립대는 교육 과정을 개편할 때 신중하고 엄격한 절차를 거친다. 이는 대학 교육의 기준점이자 탄탄한 근간으로서 배움의 기준선을 제시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성 통신이나 XR(확장현실)처럼 급변하는 최신 기술 트렌드를 교육에 즉각 반영하려면 물리적인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박 단장은 국립대의 이러한 대학의 특성을 ‘제약’이 아닌 ‘역할 분담’으로 풀어냈다. 그는 국립대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기초 역량 위에 컨소시엄 대학들의 발 빠른 최신 기술 강좌를 얹는 ‘공유’ 전략이 주효했다고 강조한다.

박 단장은 “우리 학교 커리큘럼에서 다루지 않는 위성 통신이나 양자 기술 관련 수업을 국민대나 한국항공대 등 타 대학 강의를 통해 수강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기초’와 ‘트렌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했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소속 대학 수업에만 집중하던 학생들이 이제는 학기당 20~30명씩 타 대학 수업을 통해 부족한 퍼즐을 스스로 채우며 학습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박 단장은 “학생들이 본인이 원하거나 이득이 되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수업을 선택하게 된 것이 사업의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제도적인 유연성도 크게 확대했다. 통상적으로 엄격하게 적용되던 전공 인정 기준을 혁신적으로 개선해, 올해 1학기부터 ‘양자보안차세대통신’ 융합전공을 신설했다. 이는 타 대학의 온·오프라인 수업만으로도 전남대의 부전공 이수가 인정되는 사례다. 박 단장은 “대학 행정 시스템 내에서 이 정도의 유연성을 확보한 것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대폭 보장하는 의미 있는 진전이자 큰 돌파구”라고 평가한다.

또한 진입 장벽을 낮춘 ‘마이크로디그리(세부단위 전공)’ 15개를 개설해 학생들이 부담 없이 다양한 분야를 탐색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부전공은 이수 학점이 많아 부담스러웠지만, 마이크로디그리는 6과목 내외의 소규모 과정으로 구성되어 접근성을 높였다. 박 단장은 “학생들이 무거운 전공 과목 대신 교양 수준의 가벼운 타 대학 수업만 선호하는 쏠림 현상도 일부 존재하지만, 마이크로디그리가 전공 심화 학습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의실 밖, ‘진짜 문제’와 부딪히다: ‘위밋(WE-Meet)’과 지역 상생

이론 교육의 확장이 대학 간의 벽을 허물었다면 실무 역량의 확장은 강의실 밖 ‘현장’과의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 박 단장은 산학 연계 프로젝트인 ‘위밋(WE-Meet) 프로젝트’가 학생들에게 교과서 밖의 생생한 현장 경험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이 프로젝트는 학생이 팀을 이뤄 기업이나 연구소가 제시한 실제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 단장은 “삼성전자, 포스코DX, 연구소 등 20~30명 규모의 멘토 풀을 구성해 학생들과 매칭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멘토와 대화하며 현업의 노하우를 배우고, 지도 교수 외에 다양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img1박 단장의 고민은 WE-Meet 프로젝트에서의 결실로 나타났다. 사진은 2026년 1월 WE-Meet 프로젝트 경진대회에서 차세대통신 부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한 전남대학교의 TOTORO 팀. 전남대 학생들은 2025년 2월에도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 전남대학교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학생들의 주도성을 극대화한 운영 방식이다. 통상 위밋 프로젝트는 기업이 주제를 제시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전남대 사업단은 여기에 더해 학생들이 직접 주제를 정하고 역으로 멘토를 요청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을 과감히 도입했다. 박 단장은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를 가지고 멘토링을 신청했을 때, 처음에는 어려워하지만 결국 적응해 내며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남대만의 차별화된 운영 방식은 한국연구재단이 벤치마킹을 위해 직접 방문할 정도로 우수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인재 유출을 막고 지역 기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지역 상생’의 창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박 단장은 “대부분의 학생이 IT 분야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떠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도,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내 우수 기업을 재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막연하게 지역에는 갈만한 기업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알프스, 오이솔루션, ETRI 호남권 연구센터 등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지역 기업 및 연구소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편견을 깨고 있다.

박 단장은 “학생들이 인턴십과 멘토링을 통해 지역 기업의 기술력과 시스템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록 당장의 취업으로 직결되지는 않더라도, 지역 기업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학생들이 지역 내에서도 성장할 기회가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을 넘어, 지역 산업 생태계와 인재를 연결하는 가교가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코딩은 AI가, 사람은 설계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본기’의 힘

박 단장은 인터뷰 도중 교육자로서 느끼는 솔직한 고뇌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과제를 내주면 생성형 AI를 활용해 순식간에 수준급의 결과물을 만들어온다”며, “그럴 때마다 평가자로서, 또 스승으로서 ‘이 학생에게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가르침의 본질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 박 단장은 숙련된 개발자가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면서 단순 코딩 업무를 수행하던 신입 인력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박 단장은 “이제 단순한 ‘구현(Implementation)’ 능력만으로는 학생들이 생존하기 어렵다”는 안타까움을 내비치는 한편으로, 개인적으로 교육 패러다임의 전면적인 전환을 예감하고 대비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가 제시하는 돌파구는 ‘설계(Design)’와 ‘검증(Verification)’이다. 박 단장은 “코딩과 구현은 AI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시대가 됐다”며, “이제 인간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전체 시스템을 조망하고 기획하는 ‘설계 능력’, 그리고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맞는지 틀린지 판별해낼 수 있는 ‘검증 능력’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이 검증 능력의 원천은 다름 아닌 ‘공학적 기본기’에 있음을 재차 강조했다. 흔들리지 않는 기초 지식이 있어야만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 img1박 단장은 AI 시대에 대학은 설계와 검증 능력을 배양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진단했다.

교육자로서 박 단장의 이러한 철학은 현장에서 빛을 발하며 ‘창업’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는 “최근 화두인 피지컬 AI 분야에서 사족 보행 로봇을 개발해 경진대회에서 성과를 내고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며,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 속에서 학생들이 본인이 원하는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들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전했다. 그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이 학생들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임을 강조하며, 학생들이 새로운 도구인 AI를 활용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반환점을 돈 사업단의 남은 목표를 묻자, 박 단장의 시선은 시스템이나 성과지표가 아닌 ‘학생들의 마음’으로 향했다. 그는 최근 얼어붙은 취업 시장 때문에 위축되어 있거나 다소 냉소적으로 변해버린 캠퍼스의 분위기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img1전남대학교 차세대통신사업단 교직원들과 함께. 왼쪽부터 조상호 산학협력중점교수, 송미래 선임연구원, 이로운 선임연구원, 이운영 책임연구원, 오승이 선임연구원, 허진희 연구원, 박호성 단장.

“요즘 학생들을 보면 참 안쓰럽고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취업 문은 좁아지고 AI가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뉴스가 쏟아지니, 도전하기도 전에 겁을 먹거나 시니컬해지기 쉽거든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아이디어와 설계 능력만 있다면 ‘1인 유니콘 기업’도 가능한 기회의 시대입니다.”

박 단장은 학생들이 변화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차세대통신사업단이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안전한 놀이터’가 되기를 소망했다. “우리 학생들이 대기업 취업이라는 좁은 문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업단에서 제공하는 멘토링과 프로젝트를 발판 삼아 창업이든 연구든 ‘자신의 길’을 만드는 데 과감히 도전했으면 합니다. 그 맨 앞줄에서 제가, 우리 대학이 든든한 ‘러닝메이트’가 되어줄 겁니다.”